◈ 6.25 전쟁통에 세 오빠 잃고 여군에 자원입대
"내 방에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고 너무 외로워서 군생활 시절에 찍은 사진도 다 찢어버리고 죽을라고 약을 먹었어.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더 살아라'고 하셨는지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
경기도 부천의 한 임대아파트에 홀로 살고 있는 김백희(77) 할머니. 하얗게 센 머리를 짧게 자른 김 할머니가 군 시절에 썼던 베레모를 쓰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8남매 중 다섯째인 김 할머니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3살 때 경찰이었던 큰 오빠가 북한군에 의해 무참히 총살 당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이후 역시 경찰이었던 둘째 오빠도, 학도병으로 지원한 셋째 오빠도 모두 전쟁통에 목숨을 잃었다.
김 할머니는 "오빠 세 명이 모두 6.25때 북한군한테 죽었어. 그래서 어린 마음에 북한군을 무찔러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17살 때 여군에 자원입대했지"라고 여성의 몸으로 군에 입대한 이유를 조근조근 설명했다. 이 때가 전쟁 직후인 1954년이다.
김 할머니는 여군훈련소 8기생으로 초창기 여군의 일원이었다. "논산에서 훈련을 받을 때 김현숙 대령(초대 여군병과장)이 와서 '여군은 총이 없으면 부지깽이라도 들고 나가서 싸워라'하면서 가르쳤는데 그 말이 지금도 기억이나. 참 그 때는 훈련이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도 받았어"라고 김 할머니는 당시를 회상했다.
여군훈련소 인사계 등에 근무하며 여군 최초로 육군수송학교를 졸업한 김 할머니는 당시 남자들도 몰기 힘들었던 군용 지프차를 몰았다. 보병학교에서 태권도 2단 자격증도 땄다.
"지금은 이렇게 꼬부랑 할머니가 됐지만 그래도 그때는 내가 날렸어"라며 손가락을 추켜세우는 김 할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군 생활로 결혼도 포기...생활고에 병까지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군을 왜 떠났냐"는 질문에 금새 김 할머니의 고개가 떨어졌다. 중사로 근무하던 1962년 연말, 김 할머니는 직속 상관에게 지나가는 말로 "나도 좋은 세단차 한번 타보고 싶다"고 말했고 그 상관은 "그럼 제대해서 돈 벌어라"며 전역 절차를 밟았다.
며칠 뒤 이 사실을 안 다른 상관이 "전역 절차를 중단해 달라"고 국방부에 탄원까지 냈지만 이미 국방부가 전역처분을 내린 상황이었고 김 할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꽃다운 청춘을 바친 군을 떠나야 했다.
당시 김 할머니의 나이는 이미 20대 중반을 훌쩍 넘었고 당시만 해도 결혼 적령기를 놓친 노처녀 중의 노처녀였다. 거기다 여군 출신에 대한 선입견으로 결혼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후 김 할머니는 군 시절 전공을 살려 20여년 간 택시를 몰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여성차별이 심했던 당시 여성이 홀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삶을 꾸려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군시절 몸에 밴 성실함으로 차곡차곡 돈을 모아 이제 살만하다 싶어지니 병이 찾아왔다. 김 할머니는 그 뒤 몇 차례의 대수술로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고 모아놓았던 돈도 다 병원비로 써버렸다.
이후 모 종교시설이 운영하는 복지관에서 버스를 몰며 몸을 의탁했던 김 할머니는 지금은 12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비 30만원으로 힘겹게 생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퇴역 여군이라고 받는 혜택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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