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파문 1년 … ‘나는 꼼수다’ 김용민



벌써 1년이 지났다. ‘김용민 막말 논란’은 지난해 4·11 총선 정국을 뒤덮었다. 어떤 이슈도 그보다 커보이지 않았다. 제도권을 비웃던 ‘문화 게릴라’가 제도권의 핵이자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되려 하자 과거에 내뱉은 말들이 인터넷 속에 잠복해 있다 되살아나 그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 1면 헤드라인까지 장식했던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인기도 그의 막말을 희석하는 데 실패했다. 야권이 ‘질 수가 없는 선거’에서 진 이유를 얘기할 때 김용민(39)은 빠지지 않는 이름이 됐다. 21일 중앙일보에서 만난 그는 1년 전을 떠올리며 “낙선 후 ‘어디 가서 뛰어내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때에 대해서만큼은 “쫄지마”라고 말하지 못하는 그에게 1년 전 얘기를 다시 꺼냈다. 그를 만난 중요한 이유가 그거였으니. 아 참, 그렇다고 분위기가 우울하진 않았다. 그는 계속 웃었고 ‘자기 비하 개그’를 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 신문·TV·인터넷에 온통 김용민뿐이었다. 힘들지 않았나.

“선거 기간엔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가 나오는 순간 ‘아, 이젠 난 죽었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나흘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칩거하는 거밖에는.”

- 죄책감이었나.

“그렇다. 선거가 있던 주 토요일 경향신문 6면인가에 헤드라인으로 ‘김용민 때문에 몇 석 날아갔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내가 정말 죽어야 끝날 일인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 금방 털고 일어난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 순간 보니 내가 구차한 변명을 하고 있더라. 그런 구차함이 싫었다. 그래서 ‘나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 스스로 희화화하며 ‘국민 욕쟁이가 되겠다’고 트위터에 올린 거다.”

- 막말 논란 탓에 민주당이 졌다는 지적이 있다.

“내가 4800표 차로 졌다. 그런데 대선 땐 내가 민주당 노원갑 지역위원장이었는데 (문재인 후보가) 6400표 차로 이겼다. 총선 때 노원의 다른 지역(을·병)은 야당이 다 이겼다. 오죽 후보가 못났으면 나만 졌겠나. 하지만 내가 다른 지역에 타격을 줬다는 주장을 두고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와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시뮬레이션을 해봤는데 관계 있다는 근거를 찾기 힘들다고 하더라.”

-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 아니었나.

“총선 6개월 전에 제가 그런 말을 했다. 죽어도 총선 출마할 일 없다고. 그런데 나꼼수 멤버인 정봉주(전 민주당 의원)가 감옥에 갔다. 정봉주 출마를 저지하기 위한 이명박(MB) 정부의 판단이었다. 제2, 제3의 정봉주도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의 지역구에 나섰다. 하지만 정치는 내가 설 자리가 아니었다. 선거 결과로 입증이 됐고, 하하하.”

막말 논란이 커지자 그는 나꼼수 멤버인 김어준·주진우씨와 광화문에서 ‘4·11 삼두 노출 꼼수 대번개’라는 집회를 열었다. 나꼼수와 지지자들은 이 자리에서 "더 큰 잘못을 해놓고 작은 잘못을 한 사람(김용민)을 비웃고 비난한다”고 주장했다.


- 당시 중앙·조선·동아일보가 만든 프레임에 한겨레·경향까지 갇혀 있다며 언론을 비난했다.

“만들어진 프레임이 맞다.”

- 자기 잘못을 상대에 대한 적개심으로 희석해 버리는, 일종의 진영 논리 아닌가.

“8년 전 막말에 대해 우리는 잘못했다고 분명히 규정했다. 당시 중앙일보는 예전에 대학에서 내게 수강한 학생에게까지 전화해서 내 발언이나 태도에 대해 물었다. 혹시 강의 중 막말 하지 않았느냐고 뒷조사한 거지.”

- 나꼼수는 그렇게 취재 안 했나.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때 ‘나경원 1억원 피부과’를 취재하러 환자로 위장해 병원에 들어가고 유도질문하고.

“그건 제보가 있는 명확한 사안에 대한 취재였다. 강의 들은 학생과 나의 8년 전 인터넷 방송 막말이 무슨 상관인가.”

-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이에 대한 검증이었다. 청문회 땐 수십 년 전 과거 발언까지 찾지 않나. 두 취재 방식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

“다르다. 강의 들은 학생에게 전화하는 건 수사로 치면 인지수사 아닌가. 김용민 나쁜 놈이다, 이런 가추정 속에서 이뤄진 거다.”

- 그럼 나경원 피부과 취재는 나경원에 대한 호감으로 시작됐나.

“자, 8년 전 막말에 대해 난 변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연기였고 설정이었다. ‘라이스(전 미국 국무장관)를 강간해서 죽이자’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당시 미군이 포로에게 행했던 일에 대해 역지사지해 봐라, 이런 뜻으로 말한 거다. 하지만 거두절미하고 사과한다. 인권정의 차원에서라도 상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 인권정의와 상식에서 벗어났다면 사퇴했어야 옳지 않나.

“나는 끝까지 가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 가카(MB에 대한 나꼼수식 지칭)엔 가혹하면서 스스로에겐 관대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나꼼수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그런 면에서 발언의 무게감이 컸다.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막말이나 나꼼수 비키니 파문에 대해 스스로 옹호한 적은 없다.”

- 국민TV(가칭)를 준비한다고 하던데 나꼼수 버전2인가.

“나꼼수가 유사 언론의 역할을 했다면 국민TV는 정통 뉴스를 표방한 방송국이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미디어협동조합 형태로 준비하고 있다. 조합을 만든다는 말만으로도 이미 조합원이 6000명 정도 모였다. 수십 명의 기자를 채용해 정상적인 급여를 줄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나는 여러 스태프 중 한 명이다. 김용민TV, 나꼼수2는 절대 아니다.”

- 의견을 강하게 담아 ‘대놓고 편파적인 뉴스’를 해오지 않았나.

“유시민씨가 쓴 책에 ‘공정하게 편파적인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며, 편파적으로 공정한 것은 가장 편파적인 것이다’는 말이 있다. MB 내곡동 사저 사건이 대표적이다. 주요 방송들은 처음엔 보도를 안 한다. 그 다음날엔 하는데 ‘민주당이 주장했다. 여당과 청와대가 반박했다. 정치 공방으로 흐르고 있다’ 이렇게 한다. 이거야말로 공정을 빙자한 편파지. 그래서 공정한 뉴스 만들기에 뛰어든 거다.”

- 지난해 12월 나꼼수는 ‘박근혜 대선 후보와 사이비 종교 신천지 연루설’과 ‘박근혜 후보와 억대 굿판 의혹’ 등을 잇따라 제기했다. 누가 봐도 특정 후보를 위한 총력전으로 보였다. 나꼼수와 문재인 전 후보는 친밀해 보인다. 문 전 후보는 총선 직전 나꼼수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대선 출마 선언 당일 토크 콘서트에선 김어준씨가 사회를 보고.

“우리에게 ‘정치적 지향이 있다’고 한다면 인정하겠지만 특정 후보를 위해 일한다고 하면 아니라고 말하겠다. 우리가 방송하기 전에 모여서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방송하자’ 이랬겠나.”

- 나꼼수는 반MB·반새누리당에 서서 싸웠다. 하지만 야권은 패했다. 나꼼수 주장대로라면 그렇게 악한 진영이 어떻게 이겼을까.

“아…(길게 탄식), 그게 48%를 멘붕에 빠뜨렸던 가장 큰 의문이다. 추정컨대 우리 체제 속에서 아직은 제왕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다수가 판단한 게 아닐까. 심판받지 않는 권력이 많은 사회이니 대통령만큼은 강한 자가 되라는 심리…. 대답을 찾는 과정이다.”

-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는.

“수십 가지 의혹이 불거진 장관 후보자들을 보면서, 이런 인사 기준으로 보면 나 같은 사람은 국립국어원장을 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하하하하.”

- 한 달이 지났는데 나라를 위해서라도 기대를 좀 걸어야지 하지 않나.

“물론 잘되길 바란다. MB 정부는 모든 통치 동력이 사적 이익이었다. 그렇진 않을 거란 기대가 있다. 그것만 해도 큰 변화고 발전이다.”

- 문재인 전 후보는 다시 대선에 나올 수 있나.

“가능하다.”

- 바람직한가.

“바람직하지 않을 게 뭔가. 48%는 ‘당신은 가능성이 있다, 자격이 있다’고 평가했다고 본다. 안철수도 박원순도 자격은 있으니 셋이 나와 경쟁해서 2017년 대선에서 정권 잡아라, 이런 마음들 말이다.”

- 대선 후 유럽에 갔던 김어준·주진우씨가 4월에 입국한다는데 검찰 수사를 피해 나가 있었던 건가.

“1월에 유럽 가서 만났다. 일 때문에 간 거다. 도피설은 말이 안 된다. 억대 굿판 의혹이나 선거법 위반 같은 거 무서워 나갈 사람들인가. 그리고 우리 멤버들 방송이 나가기 전에 무수히 편집하고, 편집하고, 또 편집한다. 최종적으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완전히 정제된 것만 골라서 방송한다. 문제될 거 없다.”

- 정봉주 전 의원이 지난해 12월 출소하면서 ‘잡혀갈까 봐 외국에 나가 있는 거 같다’고 했다.

“웃자고 한 말이지, 하하. 잠깐, 김용민이 김어준·주진우·정봉주 만난 건 생애 최고의 행운이다. 이 말 꼭 지면에 내줘야 한다.”

- 불화설 때문에?

“그것도 있고. 정봉주가 분위기 모르고 한마디 던진 게 바깥에 있는 사람 마음은 그렇지가 않거든. 거리가 멀면 마음도 소원해질 수 있고 그렇잖아.”

- 정봉주 전 의원이 JTBC와의 인터뷰에서 ‘보수와 중도의 언어를 사용하겠다’고 하더라.

“나한텐 진보가 그동안 자기 언어, 자기가 쓰는 행동양식에 경도돼 있다고 하던데.”

- 진짜?

“그 양반 중도인사 다 됐어,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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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강인식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출처 : 중앙일보 2013.3.30 일자

Posted by '하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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