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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재협상에서 날치기까지

                                                                                                              KBS 깅용진 기자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나”

2011년 11월 22일 한미 FTA가 최루탄 연기 속에 날치기 통과됐다. 주권이 걸린 국제조약을 언론마저 통제한 상태에서 여당이 단독으로 날치기를 통해 강행 처리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한다. 2006년 협상이 시작돼 2007년 타결됐다가, 2010년 재협상을 거쳐 2011년 날치기 처리된 한미 FTA는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 내부를 첨예하게 갈라놓았던 문제이지만, 근본적으로 가보면 한미 관계에 내재한 뿌리 깊은 종속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2007년 타결됐던 한미 FTA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재협상까지 가고, 결국 날치기에 이르게 됐는지를 살펴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11월 16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 자리에서 MB 어록에 길이 남을 발언을 하나 추가했다. 한 특파원이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가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묻자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겠느냐?”라고 말했다. 미국 대선 때 오바마가 내건 한미 FTA 재협상 공약을 단순히 선거용이었다고 치부한 것이다. MB의 이날 발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거 때 한 발언을 근거로 계속 얘기할 필요가 없다. 오바마 정권이 들어온 이후 정리된 정책이 나왔을 때 우리가 얘기하는 것이다.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그렇지 않은가.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 세계 어느 나라든지.

신뢰를 최고 덕목으로 해야 할 국가 최고 지도자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게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또 이 대통령은 "미국의 새 정권이 들어서면 한미 FTA와 관련해 자동차 부문의 재협상을 할 것이라는 한국 언론의 추측보도가 많다, 별별 추측을 하는데 그건 한미가 일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재협상 논란의 책임을 언론에 돌리기도 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미국 민주당 쪽에서 한미 FTA 재협상을 거론하는 일이 잦아지자 국내 언론이 이를 보도했을 뿐인데 이 대통령은 엉뚱하게 우리 언론을 탓하고 나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오바마의 FTA 재협상 발언을 표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했지만 이후의 상황은 이 대통령의 관측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미국 민주당의 핵심 인사들이 선거 후보자의 입장이 아니라 고위 공직자의 입장이 돼서도 한미 FTA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첫 테이프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후보자가 끊었다. 힐러리 후보자는 2009년 1월 13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 자료를 통해 한미 FTA의 일부 내용이 공정한 조건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며 핵심 조항에 대해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힐러리 후보자는 오바마 당선인이 부시 행정부가 합의한 한미 FTA에 반대하는 입장이며, 자동차 등의 부문에서 공정한 조건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클린턴의 이 같은 입장이 알려지자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 김은혜 부대변인은 1월 15일 브리핑에서 우리 쪽 입장은 “재협상은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박재완 국정기획수석도 라디오에 출연해 재협상 불가 방침을 확인했다. 이혜민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는 케이블뉴스에 나와 클린턴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겠으며, 대화를 통해 미국을 설득하겠다고 했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도 "한미 FTA는 특정 조항을 고치기 위해 재협상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양국이 모두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1월 16일 통신사 인터뷰에서 "미국이 정말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09년 새해 벽두부터 미국 국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자료 한 장이 우리나라 당정청 모두를 마치 벌집 쑤신 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 현지에서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냐.”며 오바마의 재협상 발언을 선거용이라고 평가 절하했는데, 두 달 만에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심각한 표정으로 ‘재협상 불가’를 외치게 된 것이다. 아니 적어도 언론을 앞에 두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입장은 그랬다. 그렇다면 속으론 어떠했을까?

겉으론 재협상 불가, 물밑에선 수용 의사

클린턴 후보자의 입장이 전해지고 일주일 뒤인 2009년 1월 21일 외교통상부 권종락 제1차관은 주한 미 대사 스티븐스를 찾아 갔다. 권 차관의 방문 목적은 표면상 그날 열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축하 인사였다. 두 사람은 오찬을 함께 하며 오바마 취임식과 한미관계, 북한 문제 등을 주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권 차관의 주된 관심은 일주일 전 불거진 청문회 답변에 쏠려 있었다.

이날 만남을 기록한 2009년 1월 22일 자 주한 미 대사관 전문에 따르면 권 차관은 그날 오전에 한 어떤 기자와의 인터뷰를 언급하며 한미 FTA 문제를 끄집어냈다. 권 차관은 그 기자가 미국이 진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양국에 마찰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질문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권 차관은 한미 관계는 튼튼하고 다 차원적이기 때문에 과거에도 많은 어려움을 함께 헤쳐 왔고, 그래서 양국 정부가 함께 상의하면 한미 FTA와 관련된 어떤 이슈라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답변을 해줬다고 했다.

권 차관은 또 워싱턴과 서울이 지금 당장 FTA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더라도 이것이 전반적인 한미 관계의 진전을 손상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스티븐스 대사는 권 차관의 그런 평가에 대해 동의하며, 미국 관리들은 한국 정부의 관심을 알고 있고, 동북아 지역에 대한 미국 새 행정부의 우선순위는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정도가 전문에 기록된 두 사람의 FTA 관련 대화다. 청와대와 외교부, 한나라당 등에서 입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다 나와 FTA 재협상 불가를 외쳐놓고도, 정작 정부 고위 관계자가 미국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는 ‘재협상 불가’의 ‘불’자도 꺼내지 못하고 선문답만 주고받았다. 오히려 한미 간 이견이 있더라도 서로 상의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통해 FTA에 대한 재논의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스티븐스 미국 대사는 권 차관과 만나고 20일쯤 뒤인 2009년 2월 12일, 상원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후보자의 꼬리를 뗀 힐러리 국무장관 앞으로 장문의 전문을 보낸다. 힐러리 장관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작성한 한국 관련 정세분석 보고서였다. 스티븐스는 이 보고서에서 ‘FTA 관련 마찰 피하기’라는 별도의 소제목 하에 FTA 재협상 논란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담아서 힐러리에게 보고했다.

먼저 스티븐스 대사는 힐러리 장관의 상원 청문회 서면 답변에 들어 있었던 "미국은 자동차 분야에 대한 '재협상에 다시 관여'할 필요가 있다.(the U.S. needed to 'reengage in negotiations' on autos)"라는 표현이 한국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보고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이어 한국에서 한미 FTA 재협상 논란이 벌어진 이후 한국 정부를 관찰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재협상 불가’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미국의 요구를 지나치게 존중한다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그것이 관리된 거래가 아니라는, 또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양보했다고 보이지 않게 하는 시험대를 통과할 수만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진전된 방안을 찾기 위해 우리와 함께 논의하기를 원할 것으로 감지됐다

전문에 따르면 주한 미 대사관은 한국 정부의 ‘재협상 불가’라는 공식 입장이 미국에 굴종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한 제스처로 봤다는 것이다. 또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달리 이면에서는 지나치게 양보 했다는 등의 인상만 피할 수 있다면 미국의 요구에 응할 수 있다는 신호를 한국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스티븐스 대사가 진전된 방안을 논의하기를 원한다는 주체를 한국 정부의 외교통상 관계자가 아닌 이명박 대통령으로 특정한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대사관이 청와대 측과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형태로든 교감을 했다는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다.

이 전문은 또 한국정부 관리들이 미 대사관 측에 “FTA 협상 때 자동차 관세와 자동자세, 자동차 표준, 심지어 특별 신속분쟁 해결절차 등(자동차 조항은 전체 한미 FTA 협정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다.) 미국이 요구한 모든 것들을 근본적으로 다 들어줬다.”고 조용히 지적해 왔다는 사실도 거론했다. 전문은 이 한국 관리들이 “한국은 시장을 완전 개방하고, 모든 장벽을 제거하겠다고 했는데도 보호주의 정책을 펴고 있는 일본이나 유럽보다 더 큰 비판에 처해있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고 미 대사관 측에 말한 것으로 전했다. 전문은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한미 FTA 협정에 여전히 헌신적이다.”라고 덧붙였다.

FTA 협상에서 미국에 퍼줄 만큼 퍼주었는데 미국이 또 재협상을 요구하는 상황에 대해 한국 정부 관리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자괴감을 느꼈을 만도 하다. 하지만 전문에서는 이들이 재협상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표명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주한 미 대사관은 한국 측과 접촉한 결과 이처럼 모양만 잘 갖추면 한국 정부가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일찌감치 내리고, 관련 정보는 본국에 보고한 것이다.

스티븐스 대사의 이 정세보고서가 발송된 지 며칠 뒤 김성환(현 외교통상부 장관)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미국에 건너가 스타인버그(James B. Steinberg)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난다. 이들은 클린턴 장관의 한국 방문 의제와 런던 G-20 회의 등에 대해 양국의 입장을 교환했는데, 한미 FTA 문제도 이 자리에서 거론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두 사람의 회동 내용을 기록한 2009년 2월 18일자 미 국무부 작성 2급 비밀 전문은 한미 FTA 재협상 문제에 대한 청와대의 속마음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전문에 따르면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은 스타인버그 부장관에게 “한국에게 한미 FTA는 단순한 경제 이슈를 훨씬 넘어 한미 동맹의 핵심 요소”라고 언급한 뒤 “한국정부는 한미 FTA를 한미 관계의 지주라고 믿으며 적절한 방식으로 FTA를 진전시켜나가는 것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스타인버그 부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친무역(pro-trade) 적 입장이지만, 한미 FTA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점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수석은 “한국 정부는 이 문제가 한미 관계에 부담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비서관이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나 이미 양국 정부가 1년도 훨씬 전에 서명까지 한 FTA 협정을 두고 “적절한 방식으로 FTA를 진전시켜나가는 것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 “이 문제가 한미 관계에 부담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은 재협상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문은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담당할 미 정부 관리들이 임명되면 진전된 방안을 위한 실용적 토의를 위해 양측이 함께 해야 할 것이라는 데 두 사람이 동의했다고 전했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FTA 협상 주무 부처인 미 무역대표부(USTR)의 대표 등에 대한 인선 작업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FTA 문제를 담당할 관리들이 임명된 이후 이 문제를 논의하는데 동의했다는 것이다.

2월 18일자 이 국무부 전문은 재협상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공언하던 청와대가 같은 시기에 미 고위당국자와 만난 자리에서는 재협상 불가 입장을 제시하기는커녕 사실상의 재협상 논의에 협조할 뜻을 밝혔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전문 또한 정부의 ‘공식적 입장’만 듣고 그것을 그대로 믿는다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절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을 다시 깨우쳐 준다.

“청와대, 한국전 60주년에 맞춰 FTA 비준 요청할 듯”

한미 양측이 FTA와 관련해 이런 식으로 물밑 접촉을 하고 있을 무렵 오바마 대통령은 공석이던 무역대표부 대표에 론 커크를 지명한다. 2009년 3월 9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도 부시 정권 하에서 합의된 한미 FTA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협상 방침을 밝혔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이 협정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고 나도 동의한다"며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합의안 인준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통상정책 최고 책임자가 결국 한미 FTA 재협상 방침을 공언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3월 한 라디오에 출연해 한미 FTA 재협상은 없다는 방침을 다시 밝혔다. 김 본부장은 두 달 뒤인 2009년 5월 14일 론 커크와 첫 통상장관 회의를 한 후 가진 언론 브리핑에서도 한미 FTA 재논의는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전달하고 왔다고 말했다. 2009년 11월 3일에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 얼굴을 걸고서라도 재협상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우리 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한미 FTA 재협상 요구에 공식적으로는 끊임없이 ‘불가’ 입장을 천명했다.

그런데 이런 정부 입장에 큰 변화 조짐을 보인 발언이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 입을 통해 나왔다. 이 대통령은 2009년 11월 19일 서울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한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하고 우리가 자동차 문제가 있다면 다시 이야기해보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한국 언론들은 우리 정부가 “재협상은 없다”는 기존 방침에서 한발 물러나 추가 논의의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분석을 했다. 우리 정부는 그러나 이 대통령의 발언이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혜민 통상교섭본부 FTA 교섭대표는 “협정문을 바꿀 수는 없다”며 “다만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니 가져오면 들어보겠다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재협상이나 추가협상 이야기가 아니다”며 “미국이 (자동차에 대해) 문제가 있다면서 문제의 내용에 대해선 이야기를 안 하니까 적극적으로 공세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적거리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우리가 선공을 취한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이 대통령은 또 당시 정상회담에서 FTA 비준 희망 시점을 오마바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동아일보 2009년 11월 21자 보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희망 시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략) 두 정상은 이날 오간 FTA 관련 대화를 대부분 비밀에 부치고 있지만 청와대 안팎에선 이 대통령이 내년 상반기를 비준 희망 시점으로 제시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이 대통령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또 이 대통령이 오바마에게 전달했다는 비준 희망 시기가 언제인지 논란이 분분했는데, 2009년 11월 5일 스티븐스 대사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 앞으로 보낸 정세보고서는 이런 의문들을 일부 해소해 준다. 이 전문에서 스티븐스 대사는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FTA에 대한 미국의 일정을 확인받고 싶어 할 것이며, 자신의 희망 시기도 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FTA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대해 최대한 명확한 약속을 당신(오바마 대통령-옮긴이)으로부터 받아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는 아마 2010년에 FTA 비준안을 통과시켜 한국전쟁 발발 60주년 기념과 연계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이다. 아무튼 한국정부는 미국 의회가 비준안 통과를 고려할만한 수준으로 한미 FTA를 숙성시키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로부터 더 많은 것들을, 특히 자동차 분야에서 많은 것들을 요구받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이 전문은 오바마가 한국에 오기 보름 전에 발송된 것이다. 주한 미 대사관은 이 때 이미 이 대통령의 FTA 비준 희망 시기와 그 이유 등을 파악해 오바마에게 보고한 것이다. FTA와 한국전쟁이 무슨 상관이 있어서 이를 연계하려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주한 미 대사관이 청와대가 그런 희망을 갖고 있고, 이를 정상회담에서 전달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전문은 또 한미 FTA가 미 의회를 통과하려면 자동차 분야 등을 손질해야 한다는 것을 한국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FTA에 미온적인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재논의도 가능하다는 발언을 했다는 식의 해석이 터무니없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히려 정상회담에서 자동차 분야 등에 대한 재협상 요구가 강하게 있었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공동기자회견에서 어떤 식으로든 입장표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한미 FTA는 한국을 미국에 묶어둘 핵심 요소”

참여정부 시절 FTA가 추진한 이래 MB 정권 말기 FTA 비준안이 날치기 통과될 때까지 한미 FTA 문제는 극심한 정치,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켰지만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간과한 부분이 있다. 바로 미국도 한미 FTA를 절실하게 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의 FTA 추진세력은 오로지 한미 FTA를 빨리 비준하기 위해 미국 측에 매달렸고, 반대세력은 미국도 FTA를 원하고 있다는 상황을 현명하게 활용용하지 못했다. 2009년 11월 5일 스티븐스 대사가 오바마에게 보낸 정세보고서는 미국이 한미 FTA의 전략적 측면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FTA는 아시아로의 발판을 창출한다: 한미 FTA는 다음 세대에서도 한국을 미국에 붙들어 매고, 또한 미국이 동북아시아에 정착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 가운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상호간의 본질적인 교역 이익에 더해서, 동북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헌신과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에 한국을 더욱 미국에 묶어놓는다는 측면에서 한미 FTA의 상징적 효과는 막대한 것이다.

한미 FTA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미국 측의 높은 평가는 이전의 미국 비밀 외교 전문에서도 수없이 발견된다. 주한 미 대사관은 2009년 10월 15일 게이츠 국방장관에 보낸 정세보고서에서도 한미 FTA는 “경제적 이익에 더해 심리적 효과도 방대하다”고 평가했다. 2009년 9월 24일 전문에도 비슷한 평가가 나온다. 한미 FTA에 대한 미국 측의 ‘열망’은 오바마 정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 시절 MB의 취임을 며칠 앞두고 주한 미 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전문(2008.2.21)은 한미 FTA 비준을 MB 시대를 맞은 미국의 최우선 목표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과 그의 친미 보좌관 임명(his appointment of pro-American advisors), 4월 총선에서의 한나라당의 압승 가능성은 우리에게 미래를 위해 보다 본질적인 한미 관계를 구축하는데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앞에 있는 목표는 먼저 한미 FTA 비준이다. 이것은 우리 미국 경제에 막대한 이윤을 창출해줄 뿐 아니라 한미 동맹을 위한 영속하는 경제적 지주(economic pillar)의 창조를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 FTA가 자기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되도록 공개적으로 떠들지도 않았고 우리 정부 관계자와 만났을 때도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국의 FTA 추진 세력을 안달 나게 만들었다.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미국 측과 접촉할 때 마다 한미 FTA 비준 일정 등을 캐물었다. 특히 2009년 11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공식적인’ 재협상 불가 원칙을 깨고 자동차 부문에 대해 공식적으로 재논의 의사를 밝혔는데도 미국 측에서 FTA 비준 일정을 명확히 내놓지 않자 극도의 조바심을 드러냈다.

2009년 12월 30일 자 주한 미 대사관 전문은 그날 아침에 있었던 스티븐스 대사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조찬 회동을 보고하고 있다. 전문에 따르면 유 장관은 스티븐스 대사에게 2010년에도 한미 FTA가 비준되지 않는 결과가 나올까 매우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 마이클 쉬퍼와 여야 국회의원들의 연쇄 회동을 다룬 2010년 2월 10일 자 미국 전문은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과 조윤선 의원이 FTA 비준에 미온적인 미국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의 우려에 대해 쉬퍼 부차관보는 FTA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으나 한미 동맹은 FTA 이상의 것이며, FTA를 비준하는 것이 마치 전체 한미 동맹의 미래를 대체하는 것처럼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또 “한미 동맹의 강화를 나타낼 방법은 다른 것도 많다.”라며 한국 국회의원들을 타일렀다.

2010년 2월 초 미국 국무부 커트 캠벨 차관보가 한국을 방문하자 청와대, 외교부 고위인사들이 모두 그를 상대로 미국의 FTA 추진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2010년 2월 19일자 미국 전문에 따르면 통상교섭본부 이혜민 FTA 교섭대표는 캠벨 차관보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미국 국내 정치적 문제들을 이해하고 있고, 그래서 미국이 우려하는 부분들을 다룰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 정부가 인내심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캠벨 차관보에게 미국 측의 FTA 관련 일정이 얼마나 더 걸릴 지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캠벨은 낙관적으로 본다고 대답하면서도,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말하지는 않았다고 이 전문은 전했다.

주한 미 대사관의 2010년 2월 22일자 전문도 한국을 방문 중인 캠벨 차관보와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전문에 따르면 김 수석은 “한국 정부의 견해라면서, 2010년 가을 미 의회 선거 직후에 한미 FTA를 통과시킬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캠벨 차관보에게 말했다. 김 수석은 또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관이 핵 안보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FTA관련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아이디어 중 하나가 이 대통령이 미국 현지의 한국 공장을 방문해서 미국 국민들에게 한미 FTA가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미 국무부 차관보급 인사를 상대로 미국 의회의 비준안 처리 가능 시기까지 타진해보는 모습이 안쓰러울 뿐이다. 김 수석은 또 이 자리서 엉뚱한 부탁을 하나 한다. 다음은 전문 내용이다.

김 수석은 오는 4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 정상회의 때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한국 전쟁 기념관을 방문하는 것이 가능할지를 물었다. 캠벨은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해 그런 방문이 한국과 미국 국민들 모두에게 강력한 상징이 되기는 하겠지만, 핵정상회의 기간에 일정을 잡기는 극도로 어려울 것이라고 주의를 줬다.

미국은 한미 FTA 전면 재검토 돌입

이런 요청을 받고 미국 관리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짐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어쨌든 한미 FTA 비준 문제와 관련해 미 오바마 행정부는 기존 협정을 그대로 비준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데도 우리 정부는 계속 비준 일정을 논의하려 한 것이다. 심지어 한국전쟁 60주년과 연계해 비준 일정을 희망한다던지, 미국이 원하는 안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미국 의회가 비준할 수 있는 시기를 한국 정부가 골라서 제시한다던지 하는 것들은 미국 관리들이 상당히 황당하게 받아들였을 대목들이다.

한국 정부가 이처럼 한미 FTA를 비준해달라고 미국에 매달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국회가 비준안을 먼저 통과시켜야 한다면서 수시로 비준안을 국회에 보내 여야 대치 상황을 만들 곤 할 때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FTA 재협상을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2009년 8월 6일 자 주한 미 대사관 전문은 미국이 기존 FTA 협정안에 대해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미 FTA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한미 FTA와 관련이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관심사의 정확한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과 긴밀한 논의를 하고 있고, 그들의 관심사들을 다루기 위한 권고안을 개발하고 있다. 이 검토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그리고 한미 FTA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견해를 완전히 나타낼 수 있도록 보장해주기 위해 우리 국무부는 미 연방 관보에 2009년 7월 27일 자로 한미 FTA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하는 고지를 게시했다.

2009년 9월 24일 자 주한 미 대사관 전문은 오마바 행정부가 미국 기업과 자국민들을 상대로 진행한 한미 FTA 관련 의견 수렴 작업의 실적 추후 진행 상황을 보여준다.

한미 FTA 이해관계자들의 견해를 요청하는 미 연방관보 고지에 따라 미 무역대표부는 8월말까지 모두 5백 건(250 건은 기업으로부터 온 것임)의 건의 사항을 접수했다. 무역대표부는 관심사항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루기 위한 권고안을 개발하기 위해 건의사항들을 검토 중이다.

이 전문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 때 한미 양국이 조인한 FTA 협정을 재검토하면서 한 달 넘게 미국의 모든 기업과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한미 FTA에 대한 건의 사항을 수렴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 준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2010년 말 결국 미국과 재협상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재협상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미국처럼 재협상을 위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기존 협정에 불합리한 부분이나 이익 균형이 실현되지 못한 부분들을 다시 논의해보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었다.

한미 FTA 날치기 강행, 굴욕 외교의 종결판

물론 양국 정부 대표가 서명까지 한 협정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손바닥 뒤집듯 하는 미국의 행태가 절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결과적으로 재협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면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는 오바마의 재협상 입장이 확실해지자 물밑에서는 이미 수용의사를 밝혀놓고도 공개적으로는 끊임없이 ‘재협상 불가’를 외치며 국민들을 기만해왔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의 각 이해 관계자들을 재협상을 앞두고 전혀 자신들의 의견을 제대로 피력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김종훈 통상교섭 본부장 같은 경우는 2010년 6월 30일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도 기존 협정문의 점 하나도 고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한미 양국은 결국 그해 11월 한미 FTA에 대한 사실상의 재협상에 들어갔고,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등의 문제는 거론도 하지 못한 채 퍼줄 만큼 퍼준 자동차 분야를 미국 측에 또다시 대폭 내주고 말았다.

2011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을 국빈 방문하고,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이례적인 환대를 받았다. 미국 의회는 2010년 말 재협상에서 합의된 한미 FTA에 대한 비준안을 전격적으로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한국 야당과 시민 사회 단체는 MB 정부에 FTA 독소조항에 대한 재협상을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외쳤다. 하지만 MB 정부는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했다. 미국은 재협상을 요구해도 되고 우리는 재협상 요구를 할 수 없는 것이 한미 관계의 실상이다. 이것을 정상적인 국가 관계라고 볼 수 없다. 또 이런 불합리를 수용하는 나라를 주권 국가라고 보기도 힘들다.

상대국 의회가 어떤 협정을 비준했다고 해서 우리 국회도 반드시 그것을 통과시켜야할 의무는 없다. 정부가 외국과 어떤 합의를 했다고 해서 국회가 반드시 그것을 통과시켜야 할 의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나라 집권 여당은 3년 넘게 비준하지 않아도 별 탈 없었던 FTA 협정을 미국이 비준했다고 서둘러서 끝내 날치기로 강행 처리하고 말았다.

한미 FTA 재협상 과정을 다루고 있는 미국 비밀 외교 전문들은, 지난 몇 년 간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갈등과 대립의 중심에 서 있었던 한미 FTA 문제가 독소조항이나 불평등의 문제일 뿐 아니라 보다 근원적으로 한미 간의 뿌리 깊은 비대칭성의 문제라는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와 그런 관계를 당연시 여기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사고방식이 지속되는 한 한미 FTA를 둘러싼 갈등과 유사한 문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Posted by '하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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