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은 1992년 MBC의 50일 파업이 끝나고 1년 뒤에 제작된 영상입니다.

20년이 지난 오늘의 모습과 거의 한 치의 다름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공정방송을 외쳤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들이 외쳤던 신념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희 문화방송 노동조합은 이 과거를 다시 새기고자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1992년 MBC 파업

MBC 노동조합의 공정방송을 위한 투쟁은 1990년 9월부터 이미 시작되어 노사간 갈등을 유지하고 있었다. 90년 9월 7일 우루과이라운드 반대를 위한 농민대회 개최를 앞두고 9월 4일 방영예정이던 우루과이라운드와 관련하여 농촌문제를 다룬 PD수첩이 2주간 방영이 연기되자 이에 담당 PD들과 노조간부들이 사장실을 방문해 격렬하게 항의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 사건을 문제삼아 안성일 노조위원장과 김평호 사무국장을 '위계질서 문란' 등의 이유로 해고조치했다. 

한편 MBC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을 통해 '공정방송 협의회'제도와 '보도, 편성국장 등의 노조 추천제'를 명시하여 공정방송을 위한 노조참여제도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91년 8월 24일 보도국장 인사를 노조의 추천 없이 일방적으로 단행하였다. 이렇듯 공정방송을 둘러싸고 노사간 갈등이 존재하는 가운데 92년 4월 28일부터 시작된 38차례의 교섭에서 MBC사측은 '보도국장 등 추천제'와 '공정방송협의회' 등 공정방송 관련 조항을 삭제할 것과 전임자 무급조항 신설 등을 완강하게 요구했다. 

또한 단체교섭과 병행하여 진행중이던 임금교섭에서는 회사가 총액 5%를 고집하였다. 뿐만 아니라 회사측은 교섭이 타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법적으로 8월 7일 임금을 5% 인상해서 일방적으로 1월부터 소급 지급해버렸다. 이러한 회사측의 일방적인 조치에 대해 MBC노조는 9월 1일 조합원 총회를 통해 84%의 지지로 파업을 결의, 9월 2일 전면파업에 돌입하였다. 

이어 9월 15일에는 11개 지방 MBC도 파업에 동참하였다. 특히 MBC 노조의 투쟁은 유명 아나운서들의 참여로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러한 MBC 노동조합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5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MBC 정상화와 공정방송 실현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한편 이에 대해 회사측은 9월 19일 이완기 노조위원장 직무대행 등 노조간부 15명을 고소했으며 9월 25일 노조간부 30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10월 1일과 2일에 걸쳐 징계를 단행했다. 

그리고 검찰은 9월 28일과 29일 양일에 걸쳐 고소된 노조간부들에 대한 구인을 시도한 데 이어, 10월 2일 오후 3시 30분경 13개 중대 1,600여명의 경찰병력을 투입하여 피고소인 11명과 평조합원 187명을 연행했으며 피고소인 중 이완기 직무대행, 손석희 등 7명을 구속시켰다. 이에 MBC 노동조합은 송신소, 시설운용부, 관련회사 조합원까지 파업에 동참하고 10월 5일에는 범국민대책위원회 주최의 대규모 가두캠페인이 벌어졌으며 10월 6일에는 공정방송 실현을 위한 전국방송인대회가 열리는 등 투쟁의 열기가 더욱 확산되었다. 

결국 이러한 투쟁의 열기로 10월 21일 MBC 노사의 단체협약이 타결됨으로써 노동조합의 파업은 마무리되었다. 주요 타결 내용은 "첫째 국장추천제를 폐지하는 대신 공정방송협의회의 운영규정을 강화해 국장에 대한 해임건의제를 실시한다. 둘째, 해고자 문제는 본인들의 사과가 선행되면 회사는 적극 검토한다. 셋째, 파업 관련 징계자를 화합차원에서 빠른 시일안에 조처하며 금번 파업사태로 인한 민,형사상 사규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 등이었다. 방송 공정성 등 언론 민주화의 문제로 대두된 노사간 대립에 경찰이 직접적으로 과잉 개입함으로써 구속자를 양산한 사건이다.
Posted by '하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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